시작하기에 앞서. 이 웹사이트는 체크포인트 찰리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 출간을 기념하여 만들었습니다. 지은이, 책 내용, 편집자가 고레에다 감독과 진행한 아주 짧은 서면 인터뷰, 편집 후기, 출간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오로지 글로만 담았습니다. 둘에서 다섯은 지은이 소개, 여섯에서 열은 책 소개, 인터뷰 내용은 열하나부터 그리고 편집자의 후기는 스물다섯부터 시작합니다. 번역가 송태욱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서른하나부터 등장합니다.

하나. “영화든 소설이든 그 작가의 모든 것이 첫 작품에 담겨 있다는 이야기를 흔히 듣는다. 만약 그 말이 옳다면 내게 그 작품은 영화 데뷔작이 아니라 분명히 이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둘. 고레에다 히로카즈. 일본 영화계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텔레비전 디렉터. 1962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87년에 와세다대학 제1문학부 문예학과를 졸업한 후 티브이맨유니언에 입사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연출을 담당했다.

셋. 1995년 첫 영화 <환상의 빛>으로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촬영상을 받았고, 이후 <아무도 모른다>(2004)로 제57회 칸 국제영화제 사상 최연소 남우주연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로 제66회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데 이어 <어느 가족>(2018)으로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넷. 그 밖에 <원더풀 라이프>(1998), <걸어도 걸어도>(2008), <공기인형>(2009),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세 번째 살인>(2017) 등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다섯. 첫 한국 영화 <브로커>(2022)로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애큐메니컬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으면서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에는 배우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아이유, 이주영이 출연했다. 2023년 제76회 칸 영화제에서는 <몬스터>(각본은 사카모토 유지가 썼다)가 각본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내 개봉일은 아직 미정이다.

여섯.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는 1991년 3월 12일 심야에 후지텔레비전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기초로, 방송 이후 다시 취재를 거듭하여 쓴 것이다.

일곱. 프로그램 제목은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 고레에다 감독이 장편영화로 데뷔하기 전에 기획부터 취재, 편집까지 맡아 완성한 첫 다큐멘터리였다.

여덟. 방송에서 다룬 야마노우치 도요노리는 미나마타병 관련 국가 측 책임자로, 정부와 피해환자 간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생전 사회복지를 주제로 신문에 글을 연재하고 책을 냈을 정도로 복지 행정에 최선을 다한 인물이었다.

아홉. 이에 주목한 고레에다 감독은 복지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준비하기 위해 야마노우치의 부인 도모코를 만나 취재를 시작한다.

열. 다큐멘터리 방송은 끝이 났지만, 이후에도 취재는 계속되었다. 취재를 거듭할수록 복지 관료가 아닌 야마노우치 도요노리라는 한 인간의 삶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방송에 미처 다 담지 못한 이야기는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었다.

열하나. 방송 이후에도 취재를 이어나간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실질적으로 47분짜리 다큐멘터리라는 틀 안에 넣지 못한 것이 많았습니다. 도모코 씨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방송 이후에도 취재를 계속한 동기입니다. 또 하나의 동기가 있다고 한다면, 야마노우치 도요노리가 남긴 시와 글에서 어딘지 모르게 그와 제가 비슷하다고 느낀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열둘. 이 책은 원 『그러나… 어느 복지 고급 관료, 죽음의 궤적(しかし… ある福祉高級官僚 死の軌跡)으로 라는 제목으로 1992년 12월 아케비쇼보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열셋. 이후 제목과 내용을 수정해 2001년 6월 일본경제신문사에 『관료는 왜 죽음을 택했는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官僚はなぜ死を選んだのか 理想主義者と現実の間で)로 다시 출판되었다.

열넷. 마지막으로 2014년 3월 PHP 문고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雲は答えなかった)가 발행되었다. 체크포인트 찰리에서 펴낸 한국어판은 일본에서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출간된 문고판을 번역한 것이다.

원서

열다섯. 두 차례에 걸쳐 제목을 바꾼 이유가 궁금했다. 본인의 의도였는지 물었다.

“제 아이디어입니다. 제가 삼십 대, 사십 대에 다시 읽어보고 이건 관료에 대한 것, 죽음에 대한 것 이상으로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변경한 것입니다. 변한 것은 야마노우치가 아니라 저, 고레에다 쪽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여섯. 일본에서 첫 책이 나오고도 제목과 내용을 수정해 두 차례나 추가로 출판되었다. 처음 관료의 죽음에 주목한 시점에서 한 인간을 취재하면서 달라진 시선으로, 또 출간 이후, 재출간 이후까지도 고레에다 감독은 계속해서 자신에게,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미 오래전 세상에 나온 책을 30년이 지난 지금 한국어판으로 번역해 출간하게 된 이유다. (출판사 서평 중에서)

열일곱.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는 고레에다 감독의 인사말.

“이 저작은 저의 원점입니다. 스스로 기획한 첫 다큐멘터리이고 처음으로 이십 대에 쓴 책이었습니다. 이 작품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존재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 책을 한국의 독자 여러분께서 읽어주시는 걸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열여덟. 열일곱의 인사말에서도 밝혔듯 이 책은 고레에다 감독의 원점이다. 그리고 말한다. ‘데뷔작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열아홉. 편집자가 물었다. 이 책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취재의 중심은 야마노우치 도모코 씨라는, 남편을 자살로 잃은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를 찾아가 만나며 부부와 가족의 추억담을 듣고 적은 노트가 이 책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취재를 통해 한 인간의 ‘애도 작업(grief work)’에, 부분적이긴 하지만 함께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에게 다큐멘터리 작품과 이 책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스물. 단지 첫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의미를 두는 것은 아니다. 야마노우치 도요노리를 취재하면서 느낀 동질감과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 때문이다. 취재란, 취재 대상이란, 공공이란, 인간이란, 복지란 무엇인지. 관료의 죽음 너머에서 발견한 것들은 머릿속에 수많은 질문을 남기면서 훗날 대상과 사건, 작품을 바라보는 그만의 시각으로 자리 잡았다.

스물하나. 편집자가 다른 인터뷰에서 읽은바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면서 취재에 상당한 시간을 들인다고 한다. 책에서 그는 야마노우치 도요노리라는 취재 대상에 다가가면서 접근 방식과 태도를 고민하고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때의 경험이 결국 지금에까지 영향을 준 건지 물었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작품에 대한, 대상에 대한, 사건에 대한 접근 방법은 일을 시작하던 때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스물둘. 편집자의 추가 질문. 다큐멘터리 취재에서는 대상에 개입하지 않는 선이 중요하다고 알고 있는데, 이런 점과 관련해 취재 과정에서 느낀 어려움은 없었는지.

“남겨진 말이나 글, 도모코 씨의 말을 넘어 대상(야마노우치)의 심정이나 내면을 말하지 않는다는 윤리감이 다큐멘터리나 논픽션에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과 동시에 그에 대해서는 나밖에 그려낼 수 없다는 자부심도 있었습니다. 그 절충이 힘들었습니다.”

스물셋. 야마노우치라는 인물이 울린 공명은 고레에다 감독 본인과 그의 이후 작품활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본인에게 영향을 준 인물이 또 있는지 물었다. 그의 대답. “배우 키키 키린 씨입니다.” (덧. 일본의 영화배우 키키 키린은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 가운데 <걸어도, 걸어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태풍이 지나가고> <어느 가족>에 출연했다. 참고로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기키 기린’이라고 적는다.)

스물넷.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인사를 남겼다.

“영화든 책이든 읽는 방법, 보는 방법, 받아들이는 방법은 만든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이 각자의 접근 방식으로 발견해가는 것이기 때문에 손에 들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스물다섯. 편집자의 후기.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된 건 3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그가 영화를 만들기 전에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는 것도, 그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이후 시간이 흘러 2022년 (출판사라고만 규정할 수 없는) 체크포인트 찰리를 만들고, 이 책의 한국어판을 손수 펴내겠다는 오랜 꿈을 실현할 준비를 시작했다. 내용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전에는 ‘관료의 죽음’이라는 사건과 ‘사회복지’라는 단어로 설명할 만한 이야기가 전개될 거라고 예상했다.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에서는 항상 ‘가족, 사람, 사회문제’와 같은 주제어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스물여섯. 편집자의 예상은 빗나갔다. 철저히 야마노우치 도요노리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다루었으므로. 탄생부터 문학에 뜻이 있던 유년 시절, 우수한 성적으로 고급 관료가 되기까지. 그리고 부인 도모코를 만나 시작된 부부의 이야기, 복지행정에 대한 고찰, 관료로서의 삶, 내면과 현실의 괴리, 죽음, 죽음 이후 남겨진 부인의 이야기.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했다.

스물일곱. 책을 온전히 읽고 짧은 인터뷰까지 진행하면서 당시의 취재가 고레에다 감독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으며 그로 탄생한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세계가 어떤 것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고레에다 감독이 본래 지니고 있던 생각과 가치관, 확신 같은 것들이 이미 그만의 세계를 잉태하고 있었겠지만 하나의 세계가 다른 세계를 만나면서 일어나는 울림이 얼마나 위대한지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했다.

스물여덟. 고레에다 감독이 취재 방향을 바꾼 계기가 됐다는 야마노우치의 시와 작문은 섬세하고 진지하다. 책의 일러두기에서도 밝혔지만, 야마노우치가 작성한 글은 본문과 다른 글자체로 구분해 두었다. 그가 적어 내려간 ‘그러나’라는 말, 마음속 ‘구름’이 무엇을 뜻하는지 책을 통해 그의 생각을 헤아려보고 공감해 보기를 권한다.

스물아홉. 앞서 언급했듯(열둘에서 열여섯 참고) 이 책은 일본에서 처음 출간된 이후에도 두 차례나 추가로 출판되었다. 처음 관료의 죽음에 주목한 시점에서 한 인간을 취재하면서 달라진 시선으로, 또 출간 이후, 재출간 이후까지도 고레에다 감독은 계속해서 자신에게,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여기서 그 질문은 일방향이 아닌 읽는 이—각자의 사회적 위치, 삶의 가치관, 관심사—에 따라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기 충분하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다. 다음은 277쪽 문고판 후기에서 발췌한 문장이다.

“이 책의 독자 여러분이 나와 마찬가지로 야마노우치 도요노리라는 사람의 삶과 죽음을 접함으로써 자신과 자기 직업의 관계에 대해, 그 자리에서의 기술 연마 방식에 대해, 그리고 이 시대와 마주하는 방식에 대해 사고를 심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기를 바란다.”

서른.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된 지 몇 년이 지난 2022년 2월 체크포인트 찰리라는 이름으로 비로소 출간을 준비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작업은 4월 중순부터 시작되었다. 그 기나긴 과정 끝에 2022년 12월 제작을 완료하고 독자들에게 선보이게 되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데뷔작과도 같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는 체크포인트 찰리에서 출판한 첫 책이라는 점에서 편집자로서 두는 의미가 크다. 또한 야마노우치란 인물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본인밖에 없음을 확신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편집자 또한 그의 책에 확신을 갖고 출판하게 되었음을 밝힌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대답을 남길 것인가. 이 책이 가닿는 여러 지점에서 또 다른 울림이 전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서른하나. 편집자가 진행한 두 번째 인터뷰. 번역가 송태욱 선생님과의 문답.

서른둘. 송태욱 선생님의 관점에서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는 어떤 책인지. “야마노우치라는 평범한 한 인간,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야마노우치 같은 ‘좋은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 띄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드라마를 볼 때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들 비슷한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야마노우치는 ‘좋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서른셋. 원문을 접했을 때 받은 인상에 대해 질문했다. 한글로 번역된 문장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 전해질 거라고 생각했으므로. “한국 독자들에게 보낸 그의 육필을 보고 웃었던 적이 있습니다. 글씨가 참 곱고 가지런했습니다. 꼼꼼하고 단정한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보였는데, 영화나 글로 본 그의 모습과 많이 어울린다는 생각에서 나온 웃음이었습니다. 이 책을 검토할 때 원문을 보고 느낀 것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시간과 공간, 다큐멘터리와 소설이 아주 입체적으로, 영화적으로 구성되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논픽션을 읽었다기보다는 영화나 소설을 본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또한 야마노우치라는 사람을 직접 만난 것 같았습니다.”

“원문을 보면 사건의 개요나 보도 내용 등의 다큐멘터리 부분과 당시의 상황을 재현한 소설 부분이 아주 뚜렷하게 구별됩니다. 한자, 가타카나 등의 문자와 더불어 문장도 무척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번역된 글에서는 우리말의 특성상 평면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른넷. 작가로서 만난 고레에다 감독은 어떠했는지. “영화감독으로서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영화는 말할 것도 없지만, 일단 그는 글을 잘 씁니다. 이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도 굉장히 영화적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아마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이 영화를 만드는 방식과 같아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를 다시 소설로 썼는데, 우연한 기회에 그 원고를 번역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영화감독 데뷔작인 <환상의 빛>의 원작, 미야모토 테루의 소 『환상의 빛도 제가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그를, 글을 참 잘쓰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영화를 알고 나서 책을 봐서 그런지 그의 글은 영화와 무척 닮은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영화든 책이든 ‘이야기나 주제를 위해 인간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그의 말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서른다섯. 기억에 남는 구절을 꼽는다면. “야마노우치 『복지 업무를 생각한다라는 책에서 고레에다 감독이 인용한 부분입니다. 복지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의 자격 요건으로 인격이 고결하고 사려가 깊어야 한다는 도덕상 의무가 아니라 일의 특성에 대응하는 지식이나 처리 능력을 꼽아야 한다는 말에 인지의 충격을 느꼈습니다. 그런 규정이 복지 업무를 인격적으로 훈도하는 일처럼 생각하게 할 우려가 있다는 야마노우치의 생각을 길어낸 고레에다 감독의 마음이 생생하게 와닿았습니다.”

“저는 인격이 고결하고 사려가 깊으며 복지 증진에 열의가 있어야 한다는 이념을 케이스워커 자신이 자기 수련의 목표로 삼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고 적극적으로 권장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인격이 고결하고 사려가 깊다고 하는, 원래 개인 윤리관에 속하는 도덕상 의무를 그대로 직업인의 자격 세계에 끌어들이는 것, 그것도 법률상 자격 요건으로 내세우는 점에는 어쩐지 의문이 남습니다.”(152-153쪽)

“복지 업무에 종사하는 직업인에게 고결한 인격과 사려 깊은 마음이라는 도덕상 의무를 요구하는 것은 복지 업무 자체를, 상대를 인격적으로 훈도하는 일처럼 생각하는 견해를 반영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153쪽)

“생활보호 업무에 종사하는 케이스워커에게는 그 일의 특성에 대응하는 지식이나 처리 능력이 필요합니다.”(158쪽)

서른여섯. 번역 과정에서 고민한 표현이 있었는지. “이 책의 제목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雲は答えなかった)입니다.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고 할지 ‘구름은 답하지 않았다’고 할지 잠시 고민했습니다. ‘구름’은 전장인 중국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또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그의 기억입니다.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질문에 답하는 것’이거나 ‘부르는 말에 응하는 것’, 그중 하나의 의미로 정착하지 않았으면 싶습니다.”

서른일곱.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우리가 보는 것은 대부분 누군가가 보여주는 것들입니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카메라를 들고 선택해서 찍은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영화를 보는 방식으로 현실을 보면 안 됩니다. 카메라 앵글 뒤에는 피사체를 선택하는 감독이 있다는 사실, 카메라 앵글 밖에도 수많은 현실이 있다는 사실을 애써 의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일, 말해진 것을 통해 말해지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일, 그것이 책을, 예술을 보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역지사지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입장을 바꿔 생각한다는 것은 기껏해야 단식으로 기아를 체험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입장을 바꿔 절망해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번외. 이 책의 기초가 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는 복지 제도와 관련한 두 인물의 죽음을 다룬다. 반면, 책은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일본 관료의 일생에 초점을 맞춰 전개된다. 심층 취재라는 르포의 성격이 있지만, 그와 동시에 한 인물(대상)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애도 작업의 성격이 짙다. 앞서 제작한 다큐멘터리에는 감독의 저널리스트로서 시각이 담겼다면, 책은 저널리스트가 아닌 시나리오를 쓰는 영화감독으로서 시각이 작용했다고 본다. 주인공의 죽음으로 아이들과 홀로 남겨진 부인은 감독의 첫 장편영화 <환상의 빛> 주인공의 모티브가 되었다. 다큐멘터리에서 확장해 나간 감독의 작품 세계는 꾸준히 근사한 영화 작품으로 완성되어, 많은 영화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다가오는 2023년 여름,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초기 다큐멘터리 두 편을 상영하고, 관련 북토크를 열 계획이다.


상세이미지

편집자의 책상

배치도
한국어판을 준비했던 지난 몇 달간의 과정을 ‘편집자의 책상’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했다.

1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의 첫 번째 일본어판. 『그러나… 어느 복지 고급 관료, 죽음의 궤적(しかし… ある福祉高級官僚死の軌跡)이라는 제목으로 1992년 12월 아케비쇼보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2 2001년 6월 일본경제신문사에서 펴낸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의 두 번째 일본어판. 제목을 수정 『관료는 왜 죽음을 택했는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官僚はなぜ死を選んだのか 理想主義者と現実の間で)로 나왔다.

3 2014년 3월 PHP 문고판에서 발행한 세 번째 일본어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雲は答えなかった). 체크포인트 찰리에서 만든 한국어판은 이 문고판을 번역한 것이다.
참고. 다시 출간할 때마다 제목을 바꾼 것은 이 책을 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이디어였다. 삼십 대, 사십 대에 다시 읽어보면서 이건 ‘관료에 대한 것’, ‘죽음에 대한 것 이상’으로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변경했다고 한다.

4 번역본. 번역 기간 내내 궁금했던 내용을 자세히 읽고자, 편집에 들어가기에 앞서 출력해 제본했다. 번역가는 원서를 받은 날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 “궁금해서 다른 일 제쳐두고 읽기 시작. 70페이지 읽는 중. 주말까지 다 읽고 월요일 오후에 연락하겠음. 지금까지는 아주 재미있음.”
참고. 번역본에는 한국어판에 실리지 못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소다 가즈히로의 해설이 담겨 있다. 제목은, 공명하는 ‘그러나’. 본문과 별개로 해설의 출판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소다 가즈히로의 연락 두절로 허가를 받으려면 몇 주, 몇 달, 심지어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에이전시로부터 전달받았다. 아쉽지만 해설 부분을 제외하고 진행해야 했다.

5 교정지. 실제 편집 과정에서는 첫 반영 단계를 제외하고 디자이너와 피디에프 파일로 주고받았다. 중간 단계에서 출력해 실제 크기로 재단한 이유는, 판형을 가늠하고 글자 크기, 여백 등을 함께 살피며 문장을 보기 위함이었다.

6 지우개로 지워지는 펜. 종이 교정지로 작업할 때 필수 아이템이다. 간혹 한 페이지 안에서 수정 사항이 많아 복잡해질 때는 두 가지 색을 이용해 정리한다. 전용 지우개는 고무의 달라붙는 특성을 이용해 종이에 묻은 흑연을 떼어내는 원리다. 지우개 가루가 나오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7 종이 샘플. 종이를 고르기 위해 충무로에 있는 제지회사 및 유통사를 돌아다니며 샘플을 모으고, 몇 가지 후보를 추렸다. 최종으로 선택한 종이는 문켄퓨어(표지)와 아도니스러프(내지)다.

8 표지 시안. 디자이너에게 장식을 최소화하거나 글자로만 구성해달라고 요청했다. 한글 제목과 일본어 제목을 함께 넣어달라는 말과 함께.

9 샘플북. 표지를 확정하고, 24쪽 분량의 원고와 함께 샘플을 만들었다. 문켄퓨어, 아도니스러프와 최종 후보에 올랐던 ‘아코프린트’로도 출력해보았다.

10 서면 인터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니시카와 미와 감독이 이끄는 영상제작자 집단 분부쿠(BUNBUKU)의 프로듀서 미유키 후쿠마 씨에게 도움을 받아 진행했다. 당시 듣기로는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이라고 했는데, 아마 2023년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몬스터>(국내 개봉일 미정) 작업이 한창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워드 파일로 보낸 질문지에 대한 그의 답변은 종이에 적힌 글씨를 찍은 ‘사진’ 파일로 돌아왔다.

11 중국 출신 사진작가 렌항(任航, Ren Hang)의 유고 시 『한두 마디(Word or two).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의 디자인 모티브가 된 책이다. 누드 사진을 주로 찍으며 원색적 색감과 즉흥성, 노골적인 표현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높은 수위와 독특한 스타일 때문에 중국에서 활동하기 어려워져 뉴욕으로 넘어갔으나, 29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오랜 친구가 생전에 그가 써놓은 시를 영어로 번역해 책으로 엮었다. ‘한두 마디’라는 구절에서 콘셉트를 잡고, ‘렌항’이라는 사람에 어울리도록 그리고 가볍게 소비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와 같이 디자인했다고 한다. 비행기에 실려 팔려나가는 것을 피하고 필요한 이들에게만 전해지도록 소량 발행했다고 하나, 어찌 된 일인지 온라인에서 판매 중이고 바다를 건너 편집자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참고. 그는 정직하고 직접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의 주인공 야마노우치 도요노리도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매우 단정한 사람이었다. 그의 ‘애도’ 작업에 참여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일본과 한국을 넘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거장이 되었다. 그런 그가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던 시절, 그의 등장을 알린 ‘첫 시작’도 함께 표현하고 싶었다. 활자와 종이로만. (하지만, 거장은 시작도 거장이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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